눈동자가 머물렀다. 그리고 사라졌다. 여자는 그렇게 남자의 시선을 느꼈지만 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고 뭐라 말하기는 더욱 어려운 관계였다. 그렇게 하루, 이틀을 견디고 있었다. 여자의 인내심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이 소모적인 관계. “팀장님 자료 가져왔습니다.” “놓고 가세요.” 막상 이렇게 마주하면 쳐다도 보지 않으면서 팀장은...
그대의 밤이 시작될 때 나의 아침이 오곤 했다. 누군가의 시작을 누군가는 끝에 이어주는 것이 지구의 눈속임이었다. 21세기에는 통하지 않을 눈속임이라는 걸 지구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잘까? 그대의 취침이 궁금한 아침. 나도 그 침대로 들어가고 싶었다. 아직 덜 깬 눈을 부비며 당신의 곁에, 그 체온 속에. 하지만 나의 아침은 그대의 밤보다 부산했고, 그대...
선생님, 제가 그곳을 떠난지도 3년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이제는 3년만큼 나이를 먹으셨겠죠? 저도 3년만큼 자랐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화단에 물도 주고 급식을 나르거나 배식하던 일이 생각나네요. 여전히 그곳은 그렇게 다정하고 아름다운가요? 졸업한 후로 마을을 떠나 선생님을 잊고 산지도 3년이 되었네요. 그간 소식 드리지 못해 죄...
빨간 장미꽃을 하나씩 뜯어서 떨어트렸다. 아파트 제일 꼭대기 층의 베란다는 이렇게 허술하고 꽃잎은 바람에 흩어진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나는 꽃잎 하나마다 유서를 남기고 있었다. 하나. 당신들을 두고 떠나는 나를 용서해요. 둘. 하지만 나도 더는 버틸 힘이 없어요. 셋. 꽃잎처럼 바람을 탈 수 있다면 조금은 나았을까요? 넷. 이건 당신들의 탓이 아니...
비가 내렸다. 갑작스레 내린 비로 축축해진 머리칼을 털며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우산, 어디 있나요?” 알바생의 손끝을 보며 나는 심각한 얼굴로 그 앞에 섰다. 종류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장우산과 휴대용 우산이 비치되어 있었다. 잠시 바깥을 바라보았다. 비가 그칠 것 같지 않은 하늘을 보니 우산을 사지 않고서는 사무실까지 걸어가기는 틀린 모양이다. ...
모든 것을 되돌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나 너와 내 사이를 되돌리기에는 너무나 멀리 와버린 시간들. “헤어지자.” 그렇게 말했지만 너는 나에게 웃으며 농담이냐고 했다. 나는 심각했고 너는 가벼웠다. 이 지독한 차이가 우리가 헤어지는 이유였다. 내가 만약에 새였다면 너는 물고기였고 우리는 그렇게 누가 보아도 이루어질 수 없는 어긋난 관계였다. 그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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